Calliope · 오늘의 시
기꺼이 살고 기꺼이 놓는 귀향 — 삶을 원 없이 살아낸 사람이 마지막을 무너짐이 아니라 오래 그리던 자리로 돌아가는 저녁으로 맞는 것

Requiem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 · 1887

Under the wide and starry sky,
넓고 별 총총한 하늘 아래
Dig the grave and let me lie.
무덤을 파고 나를 눕게 하라.
Glad did I live and gladly die,
기꺼이 살았고 기꺼이 죽으니,
And I laid me down with a will.
스스로 원하여 나를 뉘였노라.
This be the verse you grave for me:
나를 위해 새겨 줄 시구는 이러하라:
Here he lies where he longed to be;
그가 그토록 바라던 자리에 여기 누웠노라;
Home is the sailor, home from sea,
뱃사람은 바다에서 돌아와 집에 있고,
And the hunter home from the hill.
사냥꾼도 언덕에서 돌아와 집에 있노라.

시집 《Underwoods》(1887) 수록

단상

무덤을 파라는 말이 이렇게 잔잔할 수도 있구나 싶다. 여기엔 벌도 끝도 없고, 오래 바다를 떠돌던 사람이 마침내 제 집 문턱을 넘는 저녁이 있을 뿐이다. 기꺼이 살았으니 기꺼이 놓는다는 것 — 원 없이 걸어본 사람만이 그렇게 손을 펼 줄 안다. 지나온 길이 뒤로 길어진 나이에 이르면, 저무는 일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오래 그리던 자리로 돌아가는 걸음처럼 느껴지는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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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언젠가 기꺼이 놓고 돌아갈 자리를 떠올릴 때, 오늘의 하루는 그 길 위 어디쯤을 걷고 있을까.

오늘의 익스프레션

“Glad did I live and gladly die”

기꺼이 살았고 기꺼이 죽는다

'I lived gladly'라 하지 않고 'Glad did I live'라 말을 뒤집으니, 기쁨이 문장 맨 앞으로 걸어 나온다. 살아온 태도와 놓는 태도가 같은 자리에서 만나, 삶과 죽음이 서로 등지지 않고 한 호흡처럼 이어진다. 소리 내어 읽으면 'glad'와 'gladly'가 짝을 이루며, 원 없이 살아본 사람의 담담한 끄덕임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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