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iope · 오늘의 시
시간과 성숙
청포도
이육사 · 1939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문장(文章)》 1939년 8월호 발표, 《육사시집》(1946, 서울출판사) 수록
단상
청포도는 익어야만 먹을 수 있다. 이육사는 그 기다리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은쟁반을 닦고 모시 수건을 마련하며, 아직 오지 않은 손님을 위해 식탁을 차린다. 우리에게도 그런 손님이 있다면, 기다리는 그 시간에도 삶의 상은 이미 차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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